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일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은행 업무, 병원 예약, 공공 민원 처리, 쇼핑과 소통까지 대부분의 활동이 디지털 서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모든 세대에게 동일하게 편리한 것은 아니다. 특히 고령층에게 디지털 서비스는 ‘편리함’보다는 ‘장벽’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흔히 이를 개인의 적응력이나 디지털 이해 부족으로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서비스가 설계되는 구조 자체가 고령층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서비스가 왜 고령층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지, 그 배경과 구조를 살펴본다.

1. 디지털 서비스는 왜 젊은 사용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질까
디지털 서비스가 고령층에게 불리하게 느껴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서비스가 젊은 사용자를 기준으로 설계되기 때문이다. 기획 단계부터 개발, 테스트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용자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20~40대가 중심이 된다. 이 연령대는 스마트폰 사용에 능숙하고 새로운 기능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데 큰 부담이 없다. 그 결과 화면 구성, 기능 배치, 이용 흐름이 자연스럽게 젊은 사용자 기준에 맞춰진다.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효율성과 속도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사용자가 최소한의 클릭으로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이상적인 UX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효율성’은 이미 디지털 사용 경험이 충분한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기준일 수 있다. 고령층에게는 빠른 전환 화면, 숨겨진 메뉴, 아이콘 중심의 인터페이스가 오히려 혼란을 준다. 버튼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한 번 놓치면 다시 돌아가기 힘든 구조는 이용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
또한 서비스 기획 과정에서 고령층 사용자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 테스트나 설문 조사에 참여하는 집단 역시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 집중된다. 고령층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다 보니, 실제 사용 환경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은 설계 단계에서 미처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의도적인 배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한계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디지털 서비스는 자연스럽게 특정 연령층에게만 친화적인 형태로 완성된다.
2. 접근성보다 효율을 우선한 설계가 만든 장벽
디지털 서비스가 고령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접근성보다 효율을 우선한 설계 방식 때문이다. 접근성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요소지만, 실제 서비스에서는 종종 비용과 시간 문제로 후순위로 밀린다. 글자 크기, 색 대비, 음성 안내, 단계별 설명 같은 요소는 추가적인 설계와 개발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서비스는 빠르고 간결해질 수 있지만, 그만큼 이용자의 폭은 좁아진다.
고령층은 시력 저하, 인지 속도 차이, 손의 미세 조작 어려움 등 신체적 변화를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많은 디지털 서비스는 이러한 변화를 전제로 설계되지 않는다. 작은 글씨, 복잡한 화면 구성, 한 화면에 많은 정보가 동시에 노출되는 구조는 고령층에게 부담이 된다. 특히 오류가 발생했을 때 이를 이해하고 복구하는 과정이 어렵다면, 사용자는 쉽게 좌절감을 느낀다.
문제는 이러한 불편이 개인의 능력 문제로 치부된다는 점이다. “익숙해지면 된다”, “배우면 된다”는 말은 설계의 책임을 사용자에게 전가하는 표현일 수 있다. 디지털 서비스는 원래 다양한 사용자를 전제로 만들어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디지털 숙련도를 기본 조건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고령층은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할 수 없도록 설계된 환경에 놓이게 된다.
3. 디지털 전환 시대, 고령층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디지털 전환은 사회 전반의 효율을 높이고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그러나 이 변화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작용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공공 서비스 영역에서도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령층의 불편은 더욱 두드러진다. 민원 신청, 복지 서비스 조회, 건강 정보 확인 등 이전에는 오프라인에서도 가능했던 업무들이 점차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공공 디지털 서비스는 민간 서비스보다 더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인증 절차와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고령층에게 단순한 불편을 넘어 접근 자체를 제한하는 요소가 된다.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면 정보에서 소외되고, 제도적 혜택에서도 멀어질 수 있다. 결국 디지털 전환은 편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령층을 ‘지원 대상’이 아니라 ‘주요 사용자’로 인식하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령층을 위한 별도의 교육이나 도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다양한 연령층을 고려한 설계다. 디지털 서비스가 특정 세대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접근성과 이해 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한다.
디지털 서비스가 고령층에게 불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설계 구조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과 기준은 사회적 선택의 결과다. 앞으로의 디지털 환경은 더 많은 사람을 배제하는 방향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령층에게 친절한 디지털 서비스는 결국 모두에게 더 나은 서비스가 될 수 있다.